📙 독서 감상문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2024. 3. 29. 04:21

 

 
나는 소리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리를 낸다. 스스로 소리를 선택하지 않는 존재들은 소리에게 선택 받는다. 소리와 결속되는 것이 존재의 운명이다.
파도는 파도가 거기 있다고. 울음은 울음이 거기 있다고. 뼈는 뼈가 거기 있다고. 종이는 종이가 거기 있다고 기척을 낸다. 부싯돌 사이에서 태어나는 불꽃처럼 존재의 마찰에서 소리는 불거져 나온다.
뜻밖의 등장. 눈부심. 뜨거움
한정원 《노래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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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지 않은데도 들리고야 마는 소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치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소란한 나날이…. 사람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마음은 언제든 소란해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참 어렵다. 사람이 곧 사랑이기도 할 터. 사랑 때문에 일렁이는 마음을 떠올려본다. 잔물결. 잔물결. 잔물결.
마음에서 물결이 끊임없이 일어서 속눈썹이 떨리고, 입술이 떨리고, 말이 떨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떨림이 없는 사랑. 떨림이 없는 사람을 누군가는 아파하며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하겠지. 그러니깐 눈물을 떨림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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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물결이고 속삭임은 말의 잔물결이다. 그 내밀한 파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신의 대답이 곧 현재 당신의 마음. 그렇지 않을까? 나는 침묵이라 답하겠다. 때론 귀를 막아야 들리고, 눈을 감아야 보인다. 오래 귀를 기울여야 '보이는' 것이 있고, 오래 보아야 '들리는' 것이 있다.
김현 《물결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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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인 곳에서라면 온전한 교감이 가능할 듯 싶었다. 영화가 흐르는 동안 혹시라도 마음이 버거워지면 언제든 정지 버튼을 누를 요량으로.
아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모두 '그 해 여름'이라는 식물을 키우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동행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일 따름이라고.
나는 저면관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니까. 아래로부터, 아래로부터 밀려오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안희연 《해가 진 뒤에》

 


 
비오는 제주도의 어느 날, 올레길을 따라가다 이르런 책방에서 이끌리는대로 집었던 책.
아무 정보도 없던 책은 중반 쯤 읽었을 때 강아솔님의 앨범 제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섯 작가가 이 앨범과 함께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앨범 속 모든 노래를 들어보았다.
 
평소 서정적인 노래를 즐겨듣지 않던 내가
요즘에 어떤 변덕인가, 인디 노래를 즐겨 듣고 있는데 그런 노래 쪽에 속해있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충분한 마음으로 노래를 받아들이고 감상할 수 있었다.
 
글보단 소리에 집중하는 내가 가사를 곱씹는 것은 지극히 낯선 일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드러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잊혀지기 싫은, 더이상 외롭게 살기 싫은 나의 마음과도 같은 것인가.
 
이별을 멀리하고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지만
결국 내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 길. 받아들이는 일.
 
제목은 소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글엔 소리에 대해 제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재밌기도 했다.
또한 본다라는 시각을 통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하는 길.
청각이든 시각이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들이라는게 여전히 흥미롭다.
 
 
 
"강아솔의 노래를 듣고 있다. 곧 나올 앨범에 실릴 미완성인 곡들이다. 완성되지 않은 것들. 채워져야 할 빈 데가 있는 것들에 나는 자주 매료되곤 한다. 이 곡들도 그렇다. 녹음은 소박하다. 목소리와 숨소리는 따듯하다. 얹히다 만 가사 뒤로 허밍이 이어진다. 눈을 감는다. 함께 듣자고 하고 싶은데, 동생에게 이 노래들을 들려줄 방법이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