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염탐중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2023. 2. 17. 17:16

◦ Erwin Wurm <Sculpture is Everywhere> ◦ 2022.12.7-2023.3.19


오스트리아의 대표 작가 에르빈 부름(b. 1954-)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전방위적 활동을 조망하는 전시이다. 에르빈 부름에게 조각이란 전통적인 조형물이자 신체를 통한 행위, 그리고 물리적인 형상 없이 존재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제시하는 '조각'의 다층적인 의미에 주목하면서 예술의 대한 선입견을 깨고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1부) 사회의 대한 고찰

펫 카, 2019
사순절 천, 2020
멜팅 하우스
풀오버, 1992-
네모난 사람, 2008/2019


예로부터 조각은 다양한 재료를 깎거나 뭉쳐 입체 형상을 만드는 예술로 여겨왔다.
조각가 에르빈 부름은 소비 지상주의 비만, 이민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1980년대 말, 그는 옷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며 형태가 변화하거나 부피가 증감하는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1990년대에는 조각의 본질 즉 피부인 신체를 소재로 하는 조각에서 시작하여 조각의 대상을 '행위'로까지 확장하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펫 카> <펫 하우스> 펫 조각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사회에 현상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담아낸 조각들이 보였다. 부유와 권력을 뜻하는 차와 집을 의인화하여 크게 부풀린 형태로 변형함으로써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겹겹이 입은 옷에 의해 부풀려진 신체를 통해 인간이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 또한 살면서 겪는 조각적 경험임을 담아냈다.

길이가 11m인 '사준절 천'은 거대한 보라색 스웨터로 2020년 오스트리아 슈테판 대성당의 중앙 제단에 걸렸다. 종교적으로 보라색은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색깔이라고 한다. 화려한 대성당에 따듯한 느낌을 주는 스웨터는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2부) 참여에 대한 고찰


"행위도 조각이 될 수 있을까"

2000년대 들어서는 관람객의 행위를 조각의 범주로 끌어들이 '1분 조각'을 선보이며 조각의 행위의 상호 관계성을 묻기 시작했다. 작가의 지시를 그린 작은 드로잉을 보며 일상에서 보이는 오브제를 통해 스스로 조각이 되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점토로 제작한 가구 모형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형태를 변형시키는 행위를 통해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가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역설적인 개념을 담아내기도 했다.



3부) 상식에 대한 고찰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 2001
밴드, 2021


3부에서는 조각의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작가의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중 평면도 조각의 범주에 속하여 그림, 사진을 통해 조각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 작가가 직접 모델이 되어 게을러지는 법을 다각도로 풀어낸 사진 작업이다. SNS 속 현대인들의 완벽한 모습이 사실은 전부 허구이며 결국, 이 작품은 게으름, 쓸데없음, 비생산성 같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항상 생산적이어야만 하는 세상 속 우리의 모습을 다시 성찰하게 한다.

그는 회화를 통해서도 조각에 개념을 재정의했다. 그림 속 글자들은 납작하게 눌린 듯한 형태이다. 마치 인체의 피부처럼 조각에 달라붙어서몸체와 부피를 표현한다. 글자를 읽어보려 하지만 끝끝내 읽히지 않는 글자들도 있었다. 그는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찾아서 형태를 만든다고 한다. 각각의 제목들(스킨, 소프트, 플랫 등)은 모두 작가의 작품들과 관련된다. '쓰여진 것과 보이는 것이 차이'를 표현하고자 단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고 추상적으로 변형하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보이는 조각품이나 예술 작품을 자주 접하곤 하지만 조각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인간의 가장 본질인 의식주, 신체 등을 통해 조각에 개념을 새롭게 모색하는 작업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생각했던 조각이라 함은 형태가 뚜렷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형태를 제거하거나 부풀리는 추상적인 작업을 통해 모호한 조각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었다.

에르빈 부름에 이야기 중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회화에서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조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더 넓은 생각의 범주로 회화, 퍼포먼스, 조각 등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게 아니였을까.

일상적인 소재에서 비롯한 작품이여서 그런지 전시와 작가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색감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참여도 해보면서 유쾌하게 감상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