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보기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본다'는 행위는,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따위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선택 행위다. 선택의 결과, 우리의 시각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둥그런 시야 안에 들어온 물건들을 훑어보며, 세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가늠해 보려 한다.
ㄴ 이미지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는 한때 무언가를 누군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비록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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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스에 대해 책을 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들에 대한 화가의 어떠한 비판적 시선도 찾아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할스가 이들을 그릴 때 씁쓸함을 느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 우리가 사람들을 보는 방식과 할스가 그의 인물들을 보는 방식이 일치 할 때 그의 묘사 방식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림 속 그려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할스가 살았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신비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이 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 당신의 위치와 관계 있다.
ㄴ 복제
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다. 원작이 가진 침묵과 고요함이라는 것은 물질 즉 물감에 스며 있어서, 보는 이의 그 물질성을 통해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언어가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복제본의 저작권 문제, 미술 매체와 출판사의 소유권 문제,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책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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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별로 글과 사진이 반복되는 구성. 생각의 집중을 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만 같다. 핵심은 현재 사회에서 변질되는 예술에 대한 시각을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결국 다른 방식을 보기란 사회 위기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