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감상문

김모아《Conte D’Hiver》

2023. 1. 22. 10:19

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들리던 여름날,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촌에 한 잡화점에 발을 들였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파리 감성의 빈티지 서점이었다. 오래된 집에 먼지가 쌓여 널브러져있는 책들처럼 낯설지만 펼쳐보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나는 홀린 듯 하나 둘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해외 서적들 사이에서 보이던 어느 한 부부의 제주 일기. 이들의 삶을 염탐하고 싶은 생각에 나는 책을 구매했다.


프랑스 어로 적혀있는 <꽁트 디베흐>의 제목을 번역하면 겨울 이야기. 여행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순간의 영감을 기록하는 허남훈 감독과 김모아 작가의 사계 연작의 첫 번째 책으로 겨울 속 제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페이지를 펼치면 보이는 생생한 제주 일상의 흔적,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내보이는 글은 삶이 목적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여행임을 잔잔하게 비쳐내고 있다. 우리는 치여 사는 현실의 막막함에, 오지 않은 미래의 두려움에 묶여 지금 이 순간을 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느껴진다. 겨울을 벗고 우리에게도 봄이 올 테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매일을 보내기로 다짐해 본다.


내가 끌어온 욕심 속에서 어느 것 하나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몸부림칠 때마다 담백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내면을 정돈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때때로 궁금해진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지.